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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동무 이야기

맨발동무도서관에서 지낸 이야기를 알려드립니다.
(일상 및 프로그램 후기 등)

제목 [길위의인문학] 1·2기(1)
작성일자 2020-07-31
 





길 위의 인문학 전환, 지속가능한 삶으로 가는 길!
[나누다] 1기 첫 번째 모임 - "포스트 코로나, 손의 감각"
강사 : 이정호(부산 온배움터 활동가, 대안학교 교사)
2020.7.29.[수] 14:00~16:00



7월 29일 수요일 오후 2시,
길 위의 인문학 [나누다] 1기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길위의 인문학 [나누다] 1기는 이정호·강수희 강사님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슬기롭게 살아낼 수 있는 삶의 이야기와 기술을 나누고,
자연농이라는 삶의 방식을 접해보는 내용으로 꾸려졌어요.
모임 초반은 이정호 강사님과, 후반은 강수희 강사님과 함께합니다.
 
열두 명의 참여자분들과 함께 시작한 1기 첫 모임!
첫 만남인 만큼, 먼저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미있는 자기소개가 끝난 후,
소박하고 생태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위해 손의 감각을 활용한 바느질 활동을 했어요.
바느질을 하며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2020)를 윤독하는 시간도 가졌답니다.
수저집 만들기 활동이 끝난 뒤에는,
함께 나눈 책과 활동에서 생겨난 궁금증이나 소감을 나누며 모임을 마무리했어요.
 


 소개 시간
 
첫 인사 시간,
강사님께서 <빨강 머리 앤>에 나오는 방식대로 자기소개를 해 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자기
이름의 앞 글자로부터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 소개하는 방식이에요.
새로운 소개 방식에 당황하기도 잠시, 다들 분주히 소개할 말을 찾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를 “렇게 이 많고 젓한 이정호”라고 소개하신 강사님은
경남 양산에서 마을 사람들과 ‘모모의 정원’이라는 텃밭을 일구며
마을 살이 중이라고 하셨어요.

처음 양산에 터를 잡게 된 건 그곳 대안학교인 ‘꽃 피는 학교’에
교사로 일하면서부터였다고 해요.
현재는 교사가 아닌 ‘꽃 피는 학교’의 학부모로 지내며
마을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마을이 지향하는 ‘농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신다고 합니다.

교육협동조합인 ‘온배움터’,
사회적 협동조합인 ‘평화를 잇는 사람들’,
청년을 모아 만든 ‘텃밭 친구들’,
실험논과 논농사를 함께 하는 ‘오손토손’

마을에서 꾸려가는 여러 모임들에 대한 소개도 해주셨답니다.

협동조합을 통해서는 마을밥상이나 마을서점 같은 마을 공간을 만들어가는 중이고,
텃밭 친구들 모임을 통해서는 청년들과 자기 땅을 가꾸면서

책도 읽고 요리도 하고 농사도 같이 짓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 살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농사’가 마을의 중요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모의 정원부터 텃밭 친구들, 오손토손까지….

강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이에 관한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답니다.

바로 마을이 지향하는 가치를 찾아나선 공부 과정의 이야기였는데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어느 시기부터 마을을 이끌어갈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마을 살이를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두고,
8개월 간 홍천의 밝은누리움터의 목사님과 마을사람들이 함께 공부했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마침내 발견한 것이 ‘농사’였습니다.

단순히 농사 짓는 행위뿐 아니라 농적인 가치를 삶 속에 녹여내는 행위 전반을

이 마을의 가치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강사님이 말하시는 농적 가치란 ‘순환’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농사의 정의가 한층 넓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나의 씨앗이 뿌려졌을 때 성장해서 열매를 맺고,
다시 그것으로 시작할 수 있는 순환의 힘을 마을 안에서도 배우고 나누면 좋겠다.’


이 순환의 삶은 동물과 함께 살아갈 때 더 잘 이루어진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공동육아에서 아이들과 함께 닭을 키우기로 한 것도,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순환을 아이도 어른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물과 야채 부스러기를 닭이 먹고,
그 닭이 다시 알을 낳거나 똥을 싸고,
그 배설물을 퇴비로 쓰고….
이렇게 동물과 함께하는 삶에는 자연스레 순환이 일어납니다.
동물을 키우는 일이 아이들의 생명감수성을 기르는 데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순환이라는 농적 가치를 몸소 보여주는 생활을 가능하게도 만들어주는 것이죠.
강사님은 ‘농적인 가치를 삶 속에서 잘 살려보고 싶다‘는 바람을 중심에 두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복닥복닥하며 살아가는 중이라고 하셔요.

 



 


다음으로 참여자분들의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요한 걸 좋아하고, 은한 향기가 나면서, 혼이 맑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개한
<길 위의 인문학> 진행자 앨리스의 소개를 지나...

재를 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한 임현아님은
코로나로 강제 휴직을 맞아 쉬는 동안
친구를 통해서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참가 신청을 하셨다고 해요.

 

요즘에 소를 굉장히 많이 먹고 있어서
밀하게 몸이 좋아지는 중이라고 소개하신 채은님은
작년 인문학 기행이 너무 좋아서 참여했다고 합니다.


도로시님은 자신을
전은 하지 않으면서 변화를 꿈꾸고

또를 사지 않으면서 1등을 꿈꾸는 사람이라며,

오늘부터는 도전과 도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을 가져보겠다고 하셨어요.
 

깜깐한 시골 밤의
은하수가 생각이 난다며
낭만적인 소개를 들려주신 김은의님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활동 시간


자기소개가 끝난 후엔 강사님께서 두 권의 책을 소개해주셨습니다.
『핸드메이드 라이프』(윌리엄 코퍼스웨이트 저, 이한중 옮김, 돌베개, 2004)

『향모를 땋으며』(로빈 월 키머러 저, 노승역 옮김, 에이도스, 2020)라는 책이었어요.


 

“첫 시간에는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기계화된 삶 이후 사람들은 손의 감각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요.
손을 사용하지 않는 게 가장 인간성을 잃게 하는 요소가 아니었을까 자주 생각해요.“



 




 

강사님은, ‘어떻게 하면 손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자주 고민하면서
‘전환’의 삶이란, 자연과 가까이 하는 삶이란

결국 ‘손을 쓰는 삶’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셨대요.
농사 짓는 사람들을 보면 손이 가장 큰 변화를 겪는 경우를 보게 되고,
그 부드럽던 손이 거칠어지는 모습이

꼭 손을 통해 자신이 지금껏 알지 못하던 세계를 열어가는 듯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고요.
농사 짓는 과정은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용도로 손을 쓰는 경험을 제공해줍니다.


결국 우리가 전환하고 싶은 삶은 소비 중심의 삶에서 생산 중심의 삶일 텐데,
무엇으로 생산할 것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그 답은 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강사님은 손의 감각을 되찾는 삶에 도움 받을 수 있는 책으로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소개하셨어요.

아이들과 수공예 수업을 하고 계신 강사님께서 오늘 강의의 참여자분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며
수저집을 만들 수 있는 천을 가져오셨어요.
저희는 강사님의 설명에 따라 바느질을 하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향모를 땋으며』를 책 한 챕터씩 윤독했답니다.

 
 



 


『향모를 땋으며』 윤독하기


 

<참취와 미역취>

왜 참취와 미역취는 혼자 자랄 수도 있는데 나란히 자랄까? 왜 둘이 짝을 이룰까?
분홍색과 흰색과 파란색이 들판에 점점이 박힌 걸 보면 기품 있는 자주색과 황금색이 나란히 놓인 것은 순전히 우연일까? 아인슈타인은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패턴은 어디서 왔을까? 세상은 왜 이토록 아름다울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눈에 추하게 보이면서도 제 목표를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그러지 않았다. 내게는 좋은 질문 같았다.
p;69


 

나는 관계를 보고, 세상을 연결하는 끈을 찾고, (가르는 게 아니라) 합치는 성향을 타고났다. 하지만 과학은 관찰자를 관찰 대상으로부터, 관찰 대상을 관찰자로부터 엄격하게 분리했다. 함께 있어 아름다운 두 꽃은 (객관성에 필요한)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 p.71


 

돌고 돌아 내가 도착한 곳은 처음 출발한 곳, 아르다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것은 과학이 묻지 않는 물음이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앎의 방식으로서의 과학은 너무 편협해서 그런 식의 물음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p.74-75


 

물론 참취와 미역취의 문제는 내가 정말로 알고 싶었던 문제의 한 예일 뿐이다. 내가 간절히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관계의, 연결의 구조였다.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어렴풋한 끈을 보고 싶었다. 왜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지, 왜 초원의 가장 평범한 구석이 우리를 뒤흔들어 경외감에 빠지게 하는지 알고 싶었다. p.77


 

 완성된 수저집


 



 
 



 


 

 나눔시간


나눔시간엔 오늘 활동을 바탕으로

포스트잇에 질문&감상을 작성한 뒤,
무작위로 섞인 포스트잇을 하나씩 골라서 답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어요.


 



 

Q. 생활 속에서 배우는 자연과, 학문으로서 배우는 생물과학
어느 게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A. 생활 속에서 배우는 자연을 통해서는 기쁨, 희열, 감탄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에 반해 학문은 깊이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낫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생활 속에서 배우는 자연이 더 낫다고 여겨요.
식물과의 관계는 그것에 대한 지식보다
만져보고 냄새 맡고… 이렇게 직접 만나면서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 다른 의견도 나왔습니다.
 

A. 그 둘을 꼭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식물학을 예술처럼 접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책의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식물학 안에서도 시를 느끼고 배울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과학과 예술적인 것, 이 두 가지를 분리했던 교수 태도가 문제인 거죠.
식물학이라는 학문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 지식의 득을 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요.
단순히 감상(정서)/이론이 중요하냐, 는 대립관계로 보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자연을 접할 때 지식 쪽으로 저울추가 기우는 게 문제지,

어떤 것도 덜 중요하거나 불필요한 건 없어요.
둘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얼마나 자연과 함께하게 해주어야 좋은 엄마인지?
A.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엄마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각자 가능한 선에서 아이를 자연과 함께하도록 해주는 일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이전에 베이비페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에게 최상의 것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생각이 복잡해진 경험이 있어요.
가장 좋은 것,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은
부모라면 결코 다르지 않을 텐데,
자신이 가진 조건과 현실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해주고 싶은데 현실이 받쳐주지 않을 땐 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당시 엄마에게 이 감정들을 이야기했는데, 엄마가 들려주셨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 어떤 것보다 아이와 눈 맞춤을 한 번 더 하는 게
더 좋은 부모일 수도 있다고 하셨거든요.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물질적으로 좋은 것을 많이 제공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부모의 역할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어요.
자연과 함께해주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모두가 각자 처한 환경이 있기 때문에 자연과 함께해줄 수 있는 현실 여건이
부족할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럼에도 아이에게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면서
아이와 진심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A.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요리에도 큰 취미가 없고, 손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드는 데도 익숙지 않아요.
얼마 전 수저집이 필요해 인터넷에서 스테인리스 빨대집을 수저집 대신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길이가 길어서 수저집으로 적당하지 않더라고요.
결국 반품하고 말았는데, 오늘 수저집 만들기 활동을 하며
내가 바느질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드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고민을 하거나 불필요한 인터넷 주문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여나가는 일이
이 사회에서 내가 조금 더 자립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무기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우선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배워보고 싶습니다.


 

 





 

길 위의 인문학 전환, 지속가능한 삶으로 가는 길!
[나누다] 2기 첫 번째 모임 - "포스트 코로나, 손의 감각"
강사 : 이정호(부산 온배움터 활동가, 대안학교 교사)
2020.7.29 [수] 19:00~21:00

 


7월 29일 수요일 저녁 7시,
길 위의 인문학 [나누다] 2기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길위의 인문학 [나누다] 2기는 이정호·강수희 강사님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기를 슬기롭게 살아낼 수 있는 삶의 이야기와 기술을 나누고,
자연농이라는 삶의 방식을 접해보는 내용으로 꾸려졌어요.
모임 초반은 이정호 강사님과, 후반은 강수희 강사님과 함께합니다.
 
 



 
 

 소개 시간

첫 인사 시간,
강사님께서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방식대로 자기소개를 해 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자기
이름의 앞 글자로부터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 소개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소개 방식에 당황하기도 잠시, 다들 분주히 소개할 말을 찾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를 “렇게 이 많고 젓한 이정호”라고 소개하신 강사님은
경남 양산에서 마을 사람들과 ‘모모의 정원’이라는 텃밭을 일구며
마을 살이 중이라고 하셨어요.

처음 양산에 터를 잡게 된 건 그곳 대안학교인 ‘꽃 피는 학교’에
교사로 일하면서부터였다고 해요.
현재는 교사가 아닌 ‘꽃 피는 학교’의 학부모로 지내며
마을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마을이 지향하는 ‘농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신다고 합니다.

교육협동조합인 ‘온배움터’,
사회적 협동조합인 ‘평화를 잇는 사람들’,
청년을 모아 만든 ‘텃밭 친구들’,
실험논과 논농사를 함께 하는 ‘오손토손’

마을에서 꾸려가는 여러 모임들에 대한 소개도 해주셨답니다.

협동조합을 통해서는 마을밥상이나 마을서점 같은 마을 공간을 만들어가는 중이고,
텃밭 친구들 모임을 통해서는 청년들과 자기 땅을 가꾸면서

책도 읽고 요리도 하고 농사도 같이 짓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 살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농사’가 마을의 중요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모의 정원부터 텃밭 친구들, 오손토손까지….

강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이에 관한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답니다.

바로 마을이 지향하는 가치를 찾아나선 공부 과정의 이야기였는데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모인 마을 사람들은 어느 시기부터 마을을 이끌어갈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마을 살이를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두고,
8개월 간 홍천의 밝은누리움터의 목사님과 마을사람들이 함께 공부했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마침내 발견한 것이 ‘농사’였습니다.

단순히 농사 짓는 행위뿐 아니라 농적인 가치를 삶 속에 녹여내는 행위 전반을

이 마을의 가치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강사님이 말하시는 농적 가치란 ‘순환’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농사의 정의가 한층 넓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나의 씨앗이 뿌려졌을 때 성장해서 열매를 맺고,
다시 그것으로 시작할 수 있는 순환의 힘을 마을 안에서도 배우고 나누면 좋겠다.’


이 순환의 삶은 동물과 함께 살아갈 때 더 잘 이루어진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공동육아에서 아이들과 함께 닭을 키우기로 한 것도,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순환을 아이도 어른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물과 야채 부스러기를 닭이 먹고,
그 닭이 다시 알을 낳거나 똥을 싸고,
그 배설물을 퇴비로 쓰고….
이렇게 동물과 함께하는 삶에는 자연스레 순환이 일어납니다.
동물을 키우는 일이 아이들의 생명감수성을 기르는 데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순환이라는 농적 가치를 몸소 보여주는 생활을 가능하게도 만들어주는 것이죠.
강사님은 ‘농적인 가치를 삶 속에서 잘 살려보고 싶다‘는 바람을 중심에 두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복닥복닥하며 살아가는 중이라고 하셔요.


 




저는 금씩 조금씩
근히
사람을 신없게 만드는 조은정입니다.
 
확하고 반듯한 걸 좋아하는데
재는 대천천에서 널부러져서 잘 놀고 있는 입니다.
 
해 옆 화명동에 사는
냥하지 않은 해지고 싶은 사람입니다.
저는 이곳 맨발동무도서관에 수요일 저녁 길 위의 인문학 2기에 들어온 것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미숙입니다
숙입니다
입니다 숙숙 잘 자라고 있습니다.
 
김영애입니다.
해 옆에 사는
부족한 게 많은데
정을 가지고 여기 왔습니다.
 
선자입니다
자입니다
야라고 불러주면 됩니다.
 
과 밖이 모두 기로워지고 싶은
이에요.
 
밥, 김치, 김가루, 김자반, 김자가 들어간 모든 음식을 사랑하고 좋아해요
그런 엉이에요.
늘 다른 사람의 삶이 부러웠어요.
늘 다른 사람의 삶이 부러운 부엉이었어요.
저는 늘 연연하는, 어쩌면 나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를
연연해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입니다.
전환을 통해서 연연해하지만 말고 저기로 한 걸음 걸어가서 살 수 있도록.
그런 ‘’이에요.
 
씨는 못 심었지만 호박씨는 심었고요
명하게 살고 싶고요
스럽긴 해요.
 
박현정님은 참가한 동기를 들려주시면서 동네가수 이내의 <오래된 메일>의 일부를 불려주셨어요.
 
"새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 새로운 곳으로 찾아가. 새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을 찾아내고."

(이내, <오래된 매일>)
 
"여기 온 이유는, 선생님이 새 노래를 부르듯이 저도 제 삶 속에서 뭔가 새로운 것. 새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오래된 맨발동무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 생각을 찾아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게 되었습니다."
 
렇게 재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다들 아시는 것 같아서 이런 분위기 예상 못하고 왔는데
저도 앞으로 많이 친해지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철에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된
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사실 시간이 7시 반인 줄 알고.
화로울 영. 평생을 영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저의 삶은 공순이라서 컴퓨터, 기계, 납과 함께 살고 있어서
여러 사람과의 소통이 사실 조금 힘듭니다.
제 주변 모든 사람이 남자고 늘 남자에 둘러싸여 있고
제 인생은 대부분 95%가 남자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저 약간 단무지 스타일인데요.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있긴 하지만
와서 제 주변에 다른 사람들 제가 늘 겪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기도 하고.
6주라는 시간동안 저의 삶을 좀 변화해보고 싶습니다.

 
 활동 시간


 



 
「세 자매」(『향모를 땋으며』)

늦여름이 되자 콩에는 매끄러운 초록색 콩깍지가 주렁주렁 달려 있고 옥수숫대에서는 이삭이 비스듬히 솟아나 햇빛에 여물로 호박은 여러분의 발치에서 부푼다. 세 자매 밭은 셋을 따로따로 심었을 때보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
 셋은 자매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동생이 언니를 편안하게 감싸 안는가 하면 어여쁜 막내는 발치에 누워 있지만 너무 다가붙지는 않는다. 그들은 경쟁하지 않고 협력한다. 나도 인간 가족에서, 자매들의 교류에서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196


땅 위에서 자매들은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잎의 배치를 신중하게 조율하며 협력한다. 197

나는 오랫동안 관찰한 식물의 삶에 대한 이미지를 토대로 기억에 의존해 가르치고 있었지만, 우리가 인간으로서 공유한다고 생각한 초록의 이미지는 슈퍼마켓이 밭을 대체한 학생들에게는 딴 세상 얘기였다. 앞줄의 학생들은 내가 설명하는 것들을 직접 목격했으며 이런 매일매일의 신비가 어떻게 가능한지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씨앗과 흙을 겪어보지 못했으며 꽃이 사과로 바뀌는 광경도 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선생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제는 가을이 되면 밭에서 수업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내가 아는 최고의 선생님 아름다운 세 자매를 만난다. 9월의 오후 내내 학생들은 세 자매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학생들은 자신들을 먹이는 식물의 산출과 생장을 측정하고 해부 구조를 이해한다. 나는 처음에는 그냥 보기만 하라고 주문한다. 세 자매가 어떻게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지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린다. 201

살아오면서 만난 지혜로운 스승을 통틀어 세 자매는 가장 유창하다. 그들의 잎과 넝쿨은 관계의 지식을 말없이 몸으로 보여준다. 혼자 있으면 콩은 넝쿨일 뿐이요 호박은 넙데데한 잎일 뿐이다. 옥수수와 함께 서 있을 때에만 개체를 초월하는 전체가 생겨난다. 각자의 선물은 따로보다 함께 준비될 때 더 온전히 표현된다. 익은 이삭과 부푼 열매에서 세 자매는 모든 선물이 관계 속에서 증식한다고 조언한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질문 시간

Q. 빛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들이 뭘까요?
 
A. 저는 언제나 제가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고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은 다르죠.
특히 마을 살이하는 과정에서 저 역시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겪었어요.
일 년 전, 제가 사는 마을에 한 사건이 생겼고 마을 사람들은 두 입장으로 나누어져 갈등을 빚었어요.
결론적으론 저와 같은 입장에 있던 분들은 다 마을을 떠나셨고 저만 남게 됐어요.
그러고 나니, 당연히 마을에 남은 분들과 거리가 느껴지면서 점점 그 분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제 안에 생긴 거죠.
처음엔 거리두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마을 살이는 혼자 맺는 관계가 아니라 남편이나 아이들이 다른 가정의 가족구성원과도 다 연결되어 있으니 매우 복잡해요.
그래서 그 관계를 저 혼자 끊어내겠다고 되는 일도 아니라 ‘거리두기’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죠. 
 
그 다음 제가 택한 방법은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 방법도 부작용이 있더라고요.
아무렇지 않게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집에 오면 또다시 엄청난 자괴감과 자책감이 몰려오는 거예요.
제가 마치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 태도에 대한 자괴감이었어요.
왜 나는 그런 생각에, 마음에 계속 사로잡혀있는가.
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문제가 있는 상태로 생각하는 걸까.
그렇게 정신적으로 길을 좀 잃는 상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방금 읽은 책의 「세 자매」 내용을 보면,
호박과 콩과 옥수수가 각자의 모습으로 상생하잖아요.
저는 그게 무척 어렵더라고요.
오랫동안 쥐고 있던 이 문제가 최근 이틀 만에 제 안에서 좀 풀렸어요.
친구를 만나 이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저에게 글쓰기를 추천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에 열 문장씩 쓰는 온라인 모임을 시작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마음의 엉킴이 해결되었어요.
글을 쓰자 마법 같은 일이 생긴 건데, 글을 써 보니 제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가 너무나 명확한 거예요.
그걸 읽으면서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게 정말 당연하다’라고 생각했어요.
생각해보니 저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그 감정을 스스로 엄청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글을 쓰고 나서 그 사람을 미워하는 저 자신이 용서가 되는 경험을 한 거죠.
미워하는 자신이 용서가 됐다고 해야 하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이제 정말 아무 상관 없어지는,
너무 쉽게 그 괴로운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이었어요.

그러고 나니 ‘아, 거리두기가 무척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요.
이건 제가 처음 시도했던 물리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제 마음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서로 어우러져서 살아갈 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고
그렇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문득 문득 올라오는 올라오는 자기 안의 감정을 마주보고 알아차리고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쉽게 되지는 않지만 그런 연습이 반복된다면 점점 쉬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A. 어렸을 때 힘들면 별을 보고, ‘아 저 별이 내가 온 곳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위로받은 것 같아요.
어디에 가면 나무랑 대화도 돼요.
바닷가 근처에 살았는데 바위에 앉으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이런 걸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이런 모습 때문에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야, 너 쓸데없는 생각을 하냐’라고.
그래서 이런 얘기를 잘 안 하고 살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한동안 그런 얘기를 거의 하지 않고 살다가 이 동네에 왔는데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저는 아침마다 산책하면서 만난 나무와 대화 나눈 이야기를 주변에 전하고 있는데.
이런 교감이 가능한 사람이 있고 가능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와든 다 이런 이야기를 다 나누고 싶은데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모든 사람과 이런 얘길 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이 얘기를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조금 더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A. 저는 ‘꽃피는 학교’에 교사로 처음 왔을 때 가장 놀랐던 게
영성에 관한 것이었어요.
영성을 아이들의 생활. 하루의 흐름. 일주일. 한 달 흐름 속에 담을 수 있구나.
인간은 굉장히 정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나 우리의 마음이나 무의식 깊은 곳에는
영원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장할 때는 정신적으로는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영적인 것에 멀어졌다가 다시 나이가 들면 정신적인 존재로 변하는 것 같아요.
나이 드신 분 보면 지혜를 느끼잖아요.
저는 제가 항상 꿈꾸거나 생각하는 것들을 실제로 살아가고 계신 분들을
만나고 싶고 찾아다녔던 것 같아요.
책도 그런 책들을 봤던 것 같고.
그건 그 이야기가 그립고 위로 받고 싶어서였어요.
산다는 건 사건의 연속이고, 살면서 부대끼는 문제들이 해결이 안 될 때가 있는데,
그런 순간을 포함해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
그런 반짝임이 있는 사람들을 따라서 살고 싶었어요.


 


Q. 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요? 나무에게 질문하는 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A. 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나무한테 자기 마음도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나무의 얘기도 들릴 것 같아요.
나무에게 질문하는 건 어떻게? 솔직하게.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자기 것을 먼저 보여야 하고
솔직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관계에서 진심은 대부분 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심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내 진심이 진심이면 받는 사람도 진심일 확률이 높고 그렇게 상호작용이 되는 게 아닐까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상 그렇게 되더라고요.


 


Q. 벌목을 하게 된다면 나무를 자르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A. “생명으로 와줘서 고맙고, 또 다른 사람한테 뭔가를 나눠주고 가서 고마워.” 라고 말할 것 같아요.


 


Q. 모모네 정원에서는 호박꽃튀김을 해보셨나요?

A. 저는 호박꽃튀김은 아니고 방아꽃튀김을 자주 해먹었는데
어린 시절에 소풍갈 때마다 엄마가 도시락으로 싸주셨거든요.
저는 그 도시락을 들고 울면서 갔어요.
선생님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데 엄마가 바빠서 시장을 못 가서 방아꽃을 튀겨준 거야.
선생님한테 못 드리고 속상해서 울었어요.
최근에 방아꽃 튀김을 고급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엄마와 그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그럼 올해 한 번 해보자.’ 하셔요.
방아꽃 튀김 얘기를 동네사람들에게 많이 해서, 내가 언젠가 증명하리라, 많이 생각했어요.
언젠가 방아꽃을 따서 튀겨서 여기 계신 분들에게 대접해드리겠습니다.


 


Q. 자연 속에 오롯이 있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연은 이런 나를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A. 천천히 쉬었다 가라고 얘기할 것 같아요. 바쁜 것 같아요 저희가.
늘 쫓기면서 살아가는 것 같은데, 이슬도 보고 바람도 맞고 햇빛 한 줌을 느끼면서 쉬었다 가라고 말해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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