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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3 길위의인문학] 4_대자유치원의 기록
작성일자 2023-08-06





2023년 7월13일

2023 맨발동무도서관 길위의인문학
'기록문화의 역사'

네번째 시간_ 어느 유치원의 100년간의 기록
 : since 1927 대자유치원(창원)

"僭濫(참람)한 대자유치원"

- 강사 : 신은제(동아대 외래교수)











(후기작성: 기록활동가 구민진)

오늘의 강의 주제 ‘어느 유치원의 100년간의 기록’은 신은제 교수님이 맡아 주셨다.
‘대자유치원’이라는 곳을 소개해주셨고, 관련된 인물과 기록물을 이야기해주셨다.

대자유치원
대자유치원의 대자는 대자대비와 같은 大慈라는 한자를 사용한다고 한다.
대자유치원은 창원에 위치 해있고, 통도사 포교당 창원 정법사 부설이다.
지도로 유치원의 위치도 보여주셨는데, 바로 옆에 정법사가 있고, 유치원의 규모도 매우 컸다.

대자유치원은 배달유치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했다.
유치원이 개원한 배경도 설명해주셨다.
대자유치원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옛 창원 지역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셨다.
지금 창원의 중심지는 창원공단이지만 예전에는 마산 지역이었다고 한다.
마산에 있었던 러시아 영사관, 신마산 거리 등 옛날 사진도 함께 보았다.

마산의 사회 운동
창원 지역에서 일어난 사회 운동도 알아보았다.
1920년에는 회사설립운동이 전개되고, 학교가 설립되었다.
또 사회주의 수용과 청년운동 등 다양한 문화운동이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 속 1927년에 배달유치원이라는 이름으로 유치원이 설립되었고 지금의 대자유치원으로 바뀌었다.
1925년도에는 조선인 유치원 수가 25곳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경남 지역의 원수는 2개로 거의 유일한 유치원이었다.
배달유치원 설립 당시 결의 내용과 정보를 보여주셨다.
정원이나 원사금, 연령, 개학, 모집 기간 등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기억에 남았던 건 입학금이 무려 1원이었다는 것이었다.

대자유치원의 기록물
대자유치원은 개원 당시부터 1960년대까지 운영 관련 기록물을 보전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자유치원에 남아있는 기록물은 어떤 게 있는지 사진과 함께 설명해주셨다.
보육 앨범, 학적부, 상장, 원서 발부 명부, 입학 원서, 졸업생 명부, 재적 학생 등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원서나 졸업생 명부에는 신상 정보도 상세히 남아있다고 한다.
성명이나 생년월일은 기본이고 재산, 직업 같은 정보도 알 수 있는데 그곳에 ‘응징자’라고 적혀있었다.
이후에 응징자의 뜻을 알려주셨다.
당시 학부모였던 김형윤은 적색교원회 결성에 참여하고 일경에 의해 징역을 선고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적색노동조합운동에 또다시 참여하였다.
그 후 다시 검거되었지만 무혐의로 석방되는 등 대표적인 공산주의자였다.
그래서 ‘일제를 응징하는 자’라는 의미로 응징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졸업사진에는 유치원생들과 원장선생님의 모습까지 남아있었다.
정말 옛날인데도 매년 졸업식과 개원기념일의 사진이 남아있다.
외에도 유치원의 운동장, 생일잔치, 운동하는 사진 등 일상의 사진도 기록물로 남아있다.

대자유치원의 인물
대자유치원에 관련된 대표적인 인물을 소개하셨다.
관련 인물은 운영자, 후원자, 학부모로 분류해
관련된 인물이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와 자료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운영자로는 마산에서 유명한 이형재 원장, 실질적인 운영을 했던 이상만 원감을 소개해주셨고
후원자로는 통도사의 승려인 오택언, 건국훈장 독립장인 이우식을 소개해주셨다.
학부모로는 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임화’도 있었다.
검색으로 알 수 있을 만한 유명한 인물도 대자유치원에 많이 연관되어 있다고 하셨다.
유치원 설립 당시에 포함되어 있던 인물도 소개 건국훈장 애족장과 신간회 운동을 주도한 사람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통은 이사하면서 기록물이 버려지거나 사라지는데
대자유치원은 보존해야 한다는 큰 계획이 없었음에도 선생님들이 사소한 것까지 버리지 않고 가지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보존되어왔다고 하셨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민간의 기록이 거의 없는데
대자유치원은 약 100년 전의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마산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기록물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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