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다양성 회복하기 / 김지현
- 추천 책 :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곰출판, 2022
(발췌는 쪽번호로만 표기)
 
  cms계의 다섯 번째 행성 cms-5의 우주탐사대가 ‘태양계의 푸른 행성’에서 생명체를 찾아낸 지 10년. 푸른 행성 연구자들은 분류 작업이 한창이다. 가장 처음 생명체를 발견한 연구팀 지도교수 e/p는 생물들 중,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둥근 알 모양의 기관-이리저리 움직이고 사물을 인식하는-이 표피에 박힌 종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분류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eyes’라고 명명했다. e/p는 이 반짝이고 둥근 기관을 가진 eyes의 다양한 모식(“하나의 종을 최초로 명명할 때 그들은 그 최초의 표본을 특별한 명예를 부여한 매우 특별한 유리단지에 넣어둔다. 그 표본은 공식적인 과학의 기록부에 오를 때 그 종의 유일한 구성원으로 기재된다. 분류한 용어로 모든 표본을 ‘모식type’이라고 하는데, 최초의 신성한 모식은 영광스럽게도 ‘완모식holoytype’이라고 부른다.”95-96쪽)을 하나씩 유리관 안에 넣어둔 완모식 수납건물을 갖고 있다. cms-5의 행성인들은 e/p가 정립한 분류학에 따라 푸른 행성의 생명체들을 하나씩 분석해나가고 있다.
  이 SF적인 상상이 덧대어진 짧은 글을 태양계의 푸른 행성인 지구의 생명체 입장에서 다시 말해보자. e/p의 분류체계에 따르자면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둥근 알 모양의 기관’인 ‘눈’을 가진 생물들은 하나의 종이 된다. 즉 cms-5의 행성인들의 분류에서는 지구 생명체 중 송어와 고양이와 직박구리와 인간은 하나의 종이다. 그럴 수는 없다고? 어떻게 전혀 다른 생물들이 우연한 단 하나의 특성으로 하나의 묶음이 될 수 있겠느냐고? 글쎄, cms-5의 생명체들이 대기와 수중과 지표면을 자유롭게 오가며 살 수 있는 특성(날고 헤엄치고 걷고)을 보편적으로 갖고 있다면, 지구인의 관점으로는 알 수 없는 우리와 아주 다른 특성들을 갖고 있다면, 그들에게 지구 생명체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우리로서는 ‘우연한’ 공통점일 뿐이고 우리가 실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종일지라도 그들의 ‘편리’에 의해 다양한 종들은 한 묶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 역시 바로 그 우연한 기준점, 특정한 관점(편리성)에서 수많은 생명체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만들어 인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고기fish’란 바로 그 우연한 분류, 지극히 인간의 편리한 인식을 위한 분류의 정점이다. 어류는 물에서 사는 아가미가 있는 척추동물을 지칭하는 분류학적 정의로 ‘지구상에는 2만 9천 종’(두산백과 참조)의 어류가 있다. 이 엄청난 종의 묶음은 마치 cms-5 행성인들의 분류처럼 허황해보이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물에서 산다는 특성-만으로 하나의 ‘(어)류’가 되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즉 우리는 상어도 피라미도, 장어도 물고기라고 부르며 그 종들이 실은 결코 하나의 묶음으로 묶일 수 없다는 진실에 관심이 없다. 지구 생명체 중 눈을 가진 종들을 ‘eyes’로 묶은 cms-5 행성인들의 분류가 지구 생명체의 관점에서는 허구에 가깝듯, ‘물고기’라는 분류 역시 상상의 산물이다. 진실로, ‘물고기’는 없다.
  책은 단순히 물고기라는 분류가 불가능하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에 매몰되지 않는다. 보다 신화적으로, 그러니까 그러한 허황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한 사람(데이비드 스타 조던, 분류학자)의 생애를 좇아 서사적으로 스토리텔링한다. 스토리텔링은 유용한 방식이자 진실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더없이 탁월한 전략이다. 우리가 상식과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자연의 질서가 실은 인간의 상상에 의해 직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진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바로 그러한 상상이 어느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는가를 좇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럼 물고기는 없다는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도대체 왜 중요할까. 우리가 물고기라는 분류를 포기한다고 물속에 사는 송어, 고래, 니모가 실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저자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뒤좇으며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을 우리 역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건 세상의 많은 분류가 인간 삶에 유용하고 실용적이라면 왜 그걸 포기해야 하는가? 이 책이 과학서가 아닌, 룰루 밀러의 삶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나란히 놓고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의 서사에서 출발하며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물고기(라는 분류)는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은 한 사람의, 우리의 삶에 아주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일이다.

  ““어류”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멸적인 단어다. 우리가 그 복잡성을 감추기 위해, 계속 속 편히 살기 위해, 우리가 실제보다 그들과 훨씬 더 멀다고 느끼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다.”(251쪽)

  인간 사회에서 역시 손쉽게 ‘명명命名’하고 각각의 고유한 개체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분류법이 뿌리 깊이 박혀있다. 장애인, 성소수자, 청년, 청소년, 여성, 남성 그 어떤 ‘종種’이든 특정한 종으로 호명되는 순간 존재의 다양성은 삭제되고 명확한 종의 특성으로부터 벗어난 수많은 ‘실제’ 존재들은 울타리 밖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250쪽)는다. 이미 자연은 다양성으로 가득한데 인간은 스스로 다양성을 포기하고 ‘우연’에 의해 구분지은 분류법을 맹신하며 스스로의 삶의 가능성을 빼앗고 있다. 생명은 “크건 작건, 깃털이 있건 빛을 발하건, 혹이 있건 미끈하건” 이미 “그 어마어마한 범위 자체가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데 무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206쪽)다. 물고기를 포기하는 것은 다양한 개체를 ‘편의’에 따라 하나의 묶음으로 처리해 다양성을 획일화하는 구조화에 반대하는 일이다. “점 위의 점일지” 모르는 분류 속 하나의 개체를 세상 유일무이한 고유한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227쪽)으로 인식할 때 삶은 전혀 다른 빛깔을 갖게 된다.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수히 많은 작고 반짝이는 존재의 다양성으로 가득 찬 세상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기 위해, 모든 생물에게는 결코 이해하지 못한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227쪽 참고)을 받아들이기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